With KITIA • 전문가 칼럼①
소부장과 공급망:
‘진짜성장’과 경제안보 강화를 위한 정책 방향

  • 이 준
    경영부원장 선임연구위원
    jlee@kiet.re.kr / 044-287-3246
    「공급망 3법과 한국형 경제안보, 도전과 과제는?」 (공저, 2024)
    「경제안보 위험 평가(Risk Assessment) 방법론 개발 및 관리 방안 연구」(공저, 2024)
    「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대외여건 변화와 대응 방안」(2022)

  • 김 지 현
    산업구조·정책효과분석실 연구원
    kjh@kiet.re.kr / 044-287-3044
    「한국 대미 수출의 구조적 분석-수지 불균형을 넘어선 산업 연계 구조」(공저, 2025)
    「경제 안보와 첨단전략산업: 석학들의 시각과 해법」(2023)

  • 양 주 영
    경제안보·통상전략연구실 부연구위원
    jyang@kiet.re.kr / 044-287-3123
    「글로벌 통상질서 전환과 대한민국 통상의 새로운 길」(공저, 2025)
    「한국의 공급망 취약성 분석과 수출전략에 대한 시사점」(공저, 2024)
    「한국의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경제안보 핵심품목 선정연구」(2024)

  • 본 원고는 월간 KIET 산업경제 정책과 이슈에 실린 ‘소부장과 공급망: ‘진짜성장’과 경제안보 강화를 위한 정책 방향’을 발췌하여 게재한 원고입니다

    2000년대 우리 산업정책의 상징인 소부장 정책이 시작된 지 올해로 25년째를 맞았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기본계 획을 통해 ‘부품·소재’→‘소재·부품’→‘소부장’→‘소부장 및 공급망’으로 진화해 온 우리 소부장 정책은 현재 중국의 첨단 제조 굴기, 경제안보 및 미·중 전략경쟁 부상, 산업정책과 보호무역주의 회귀 등 전환기적 글로벌 산업 환경 변화를 마주 하며 정책 전환의 중대 갈림길에 서 있다. 현재 우리 소부장이 직면하고 있는 잠재적·실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단기 정책금융 공급, 맞춤형 해외진출 지원으로 미국발 관세×산업정책에 대응하는 한편, 현재의 외부 압력을 내부 구조혁신의 동력으로 삼아 AX를 기반으로 사업 재편, 사업 전환 등을 적극 활용하여 생태계를 고도화하는 것이 필 요하다. 동시에 국가별 상호관세 차이를 활용한 해외기업 유치 등도 소부장 생태계 총량 확보 차원에서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핵심 전략 소부장 확보 범위 및 방식을 다층화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중국 소부장에 대응할 수 있는 품목 과 전략을 담을 수 있도록 정책이 설계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협력모델 개념의 확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경쟁기업 간 수평적 동맹, 지역별 전략적 동맹, 해외기업과 국내기업 간 동맹 등 기존 발상을 뛰어넘는 창의적 발상의 기업 간 혹은 국 가 간 동맹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이제 소부장은 산업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산업별 전략에 따라 그 산업을 떠받 치고 있는 소부장 전략이 설계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첨단전략산업과 소부장 간 정책 및 거버넌스 통합 혹은 연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1. 들어가며

    현지 시간으로 지난 8월 7일, 약 4개월간 전 세계 경제를 불확실의 늪에 빠뜨렸던 미국의 상 호관세가 확정·발효됐다. 그리고 같은 날 제이미 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 무역대표부 대표 는 승전고(勝戰鼓)를 울리듯, 「뉴욕타임즈」 기고 를 통해 지난 30년간 글로벌 무역 질서를 규정했 던 WTO 체제의 종식을 선언했다.1) 그가 ‘턴베리 (Turnberry) 체제’로 명명한 새로운 국제 무역 질 서는 말 그대로 미국의, 미국에 의한 그리고 미국 을 위한 무역체제다.2)
    글로벌 산업·무역 질서의 새판짜기가 시작됐 다. 새로운 ‘판’으로 현상을 변경하기 위한 미국 의 행동이 지극히 일방적이고 거친 것은 사실이 지만, 방향은 오히려 선명하다. 미국에 엄청난 무역적자와 함께 제조 기반과 일자리 상실을 야 기한 현재의 글로벌 생산·무역 질서를 미국의 이 익과 안보가 담보되도록 ‘재조정(rebalancing)’ 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재조정의 범위와 강도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우리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임은 분명 하다. 그간 자유무역의 기치를 들고 최적의 효율 을 좇아 구축된 현재의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 이하 GVC) 체계가 재구조화된다는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GVC는 최적 의 중간재 및 자본재 수급(需給), 즉 원료, 소재, 부 품, 장비(이하 소부장) 등의 효율적 생산, 배치, 이 동 및 획득 등을 통해 완성된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GVC에 참여하고 이를 활용 하는 국가 중 하나이며, 경쟁력 있는 GVC를 구축 할 수 있는 다양하고 탄탄한 제조 생태계를 갖춘 소부장 강국이다. 우리 산업이 트럼프의 ‘재조정’ 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다.
    2000년대 우리 산업정책의 상징인 소부장 정책이 시작된 지 올해로 25년째를 맞았다. 지 금까지 다섯 차례의 기본계획을 통해 ‘부품·소 재’→‘소재·부품’→‘소부장’→‘소부장 및 공급망’ 으로 진화해 온 우리 소부장 정책은 현재 중국의 첨단 제조 굴기, 경제안보 및 미·중 전략경쟁 부 상, 산업정책과 보호무역주의 회귀 등 전환기적 글로벌 산업 환경 변화를 마주하며 정책 전환의 중대 갈림길에 서 있다. 이에 따라 본고는 그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우리 소 부장 산업과 공급망 관점에서 점검하고, 이에 대 응하기 위한 정책 방안을 모색한다. 특히 일본 수 출규제 이후 주요 이슈에 대응하며 쌓아온 소부 장 및 공급망 관련 주요 정책을 살펴보고 새로운 글로벌 산업 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전환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1) The New York Times(2025), “Trump’s Trade Representative: Why We Remade the Global Order”, August 7.
    2) 스코틀랜드 턴베리는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EU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美-EU 간 상호관세를 합의한 장 소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다자간 통상 협정을 상징하는 ‘라운드(Round)’를 차용하여 새로운 무역 질서를 ‘트럼프 라운드 (Trump Round)’라고 지칭하였다.

    2. 일본 수출규제, 그 후

    2018년 6,700만 달러 규모였던 대(對)일본 반 도체 제조용 불화수소 수입은 2020년 940만 달러 로 수직 낙하했다(<그림 1> 참조). 불과 2년 사이에 86%나 감소한 해당 품목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핵심 소재다. 그런데 2024년 수입 규모는 다시 2,700만 달러로 상승했다.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2년 사이에 230%나 급증했다. 반면 전체 수입 규모는 감소 추세로 전환됐다. 2018년 8만 3,000톤에 달했던 우리나라의 반도체 제조용 불 화수소 수입 물량은 2024년 3만 4,000톤으로 절 반 이상(59%) 줄었다. 불과 5~6년 사이 벌어진 극적인 구조 반전은 동 품목에 대한 대중국 교역 과 국내 생산을 함께 들여다보면 일정 부분 설명 된다. <그림 2>와 같이 반도체 제조용 불화수소 의 대일본, 대중국 수입 비중은 마치 데칼코마니 와 같은 대조적 형상을 띄고 있다. 반도체 제조용 불화수소는 2019년 일본이 우리를 상대로 수출 을 통제했던 3대 품목 중 하나다. 그리고 우리 소부장과 공급망의 현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 품목이다.2019년 7월 1일 전격 발표된 3대 소재(EUV 용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 미드)에 대한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는 그 간의 우리 소재·부품 정책을 한 단계 더 진화시킨 전환기적 사건이다. 2001년 ‘부품·소재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으로 시작된 우 리 소재·부품 정책의 여정은 일본에 과다 의존하고 있는 소재·부품의 국산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속칭 ‘가마우지 구조3)’라 불리던 대일본 무역역조 구조는 우리 제조업의 구조 고도화(고부가 가치형 구조)를 가로막는 핵심 원인으로 인식되었는데,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소재·부품 정책의 동 력이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작용했다. ‘일본 극복’이라는 선명한 정책 타기팅 효과가 작동했기 때문이다.이 덕분에 2001년부터 2019년 기간 동안 일본 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핵심 소재· 부품의 자립 화를 위해 5조 4,000억 원가량의 R&D 자금이 투 입되었으며, 국내에 소재·부품 산업 생태계를 조성 하기 위한 다양한 기반 시설도 구축되었다. 성과 는 즉각적이었다. 국가 차원의 정책 공급에 힘입 어 소재·부품 산업은 생산, 수출, 무역수지 등 지 표 대부분에서 전체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주력 부문으로 성장했으며, 자동차, 기계, 화학, IT 등 전 산업에 걸쳐 주요 소부장의 국산화도 상당 부분 이뤄냈다.4)

    <그림 1> 반도체 제조용 불화수소 교역 현황

    <그림 2> 반도체 제조용 불화수소 대일본 및 대중국 수입 비중

    3) 소재·부품에 대한 한국의 일본 의존 구조를 “가마우지 낚시(가마우지가 생 선을 사냥하지만, 목을 줄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생선을 삼키지 못하고 낚시꾼이 생선을 가져가는 낚시 방식)”에 비유한 것으로, 한국이 일본의 소재·부품을 공급받아 최종재를 조립하여 수출하지만 이로 인해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이 일본으로 귀속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김영호 前산업자원부 장 관이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1999년 일본의 경제학자 오마이 겐이치의 기고문을 통해 더 유명해졌다. 2001년 ‘부품·소 재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언론 기사를 종합하여 필자 정리).
    4) 한국디스플레이협회에 따르면 디스플레이 장비 국산화율은 2015년 44% 에서 2022년 73% 수준으로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한국디스플레 이산업협회, 2023).

    그런데 문제는 오랜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소재·부품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기술 난이도가 높 은 첨단 소재·부품일수록 그 취약성이 두드러졌는 데, 여기에는 ‘축적의 시간’을 요구하는 높은 기술 장벽도 물론이지만, 소재·부품 수급(需給)의 산업 적 특성, 즉 우리 수요기업과 일본 소재·부품 기업 사이 오랜 기간 형성된 경로 의존적 분업 관계도 주된 원인으로 크게 작용했다. 일본 수출규제는 이러한 고착화된 관계에 잠재 되어 있던 리스크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계기가 되 었다. 그리고 2020년 일몰을 앞두던 ‘소재·부품 전 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소재·부 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이하 소부장 특별법)’으로 전면 개정될 수 있는 충분한 동력을 제공했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전면 개 정된 소부장 특별법에는 소부장 특별회계 신설, 소 부장 특화단지 조성, 소부장경쟁력강화위원회 설치 등 기존 법령의 정책 지원 강도와 범위를 크게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 대한 변화는 바로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을 정부가 지원·촉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는것이다.5) 2019년부터 현재까지 64건의 수요-공 급기업 간 협력모델 사업이 부장경쟁력강화위 원회를 통해 승인되었는데, 해당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이차전지 파우치, 음극재용 인조흑연 등 그간 대외의존도가 높았던 소부장의 국산화가 가능해 졌다.6) 일본 수출규제 이후, 구성, 범위, 강도 등 모 든 측면에서 소부장 정책은 이전에 비해 진일보했 다. 특히 첨단 소부장의 자립화 측면에서 정책 실 효성도 분명 높아졌다. 그러나 속칭 ‘요소수’로 상 징되는 범용 소부장에 담겨있는 구조적 리스크는 다른 차원의 정책적 접근을 요구했다.
    새로운 소부장 정책 체계가 채 자리 잡기 전인 2021년 하반기에 발생한 ‘요소수 대란’은 첨단 소 부장에 국한된 공급망 문제를 우리의 모든 공급망 문제로 비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2011년을 끝으 로 국내 생산을 멈춘 ‘요소’는 원료, 비용, 노동·환 경규제 등의 요인으로 중국에 산업 경쟁력을 상실 한 범용 소부장을 상징한다. 문제는 연간 수입액이 대략 2억 달러 수준(2022년 기준)에 불과한 누구 나 만들 수 있는 차량용 ‘요소’로 인해 우리 물류 산업이 멈춰 섰다는 것이며, ‘요소’와 같이 중국에 과의존하고 있는 원료, 소재, 부품 등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는 데 있다. 우리 제조업이 모두 중국발 공급망 위협에 노출된 셈이다.
    첨단 소부장의 자립 기반 확보에 초점이 맞춰진 소부장 특별법만으로는 ‘요소’와 같은 범용 소부 장 공급망 문제에 대처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공급망 3법의 제·개정7), “소부장 3050 전략(2023. 12)”, “제1차 공급망 안정화 기본계획 (2024. 12)” 등이 신속하게 나온 배경이다.그러나 첨단 소부장 자립화와 달리 중국발 원료 및 소부장으로 대표되는 공급망 문제는 쉽게 해결 할 수 없는 난제이다. 그 이유는 임금, 입지, 제도, 규제 환경, 전력 인프라 등을 총망라한 우리 산업 의 종합적인 경쟁력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그 림 1>과 <그림 2>로 돌아가 보자. 2019년 일본 수 출규제가 발표된 이후 일본발 반도체 제조용 불화 수소 수입은 급감했다. 대신 중국 및 대만으로부 터 수입이 급증했다. 신속한 다변화의 결과이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식각 공정 에 두루 쓰이는 소재이다. 공정에 따라 고(高)순 도 혹은 저(低)순도의 불화수소가 쓰이는데 대체로 고순도는 일본에서, 저순도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일본 수출규제는 고순도 불화수소 수입선을 중국, 대만 등으로 다변화하는 계기를 제공 했다.8) 동시에 국내 생산도 본격화됐다. 그간 고 순도 불화수소 제조 기술이 있어도 납품하지 못 했던 국내 소재 기업이 정부 및 수요 대기업의 인 식 전환과 신속한 정책 지원에 힘입어 반도체 공 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국산화를 위한 초석 을 쌓았다.9) 2023년 한·일 간 산업 협력이 복원 되면서 대일본 불화수소 수입이 다시 증가하기는 했지만10), 전체 수입 규모는 수출규제 이전과 비 교할 때 현재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첨단 소부장 의 공급망 문제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R&D 에 대한 집중 투자,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 신뢰 성 등 제반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 가 가능하다. 그러나 중국발 공급망 문제는 다르 다. 일종의 범용 소재인 저순도 불화수소는 이미 중국의 경쟁력이 가장 높다. 중국이 물량 공세에 나설 경우, 국내 생태계는 버텨낼 재간이 없다. 더 큰 문제는 불화수소 제조를 위해 필요한 1차 소재 인 무수불산, 그리고 무수불산의 원료인 형석이 다.11) 중국이 글로벌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이 들은 소위 R&D 그리고 협력모델 등을 통해 우리 가 공급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 더군다나 중국은 이미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도 가능하다.
    이는 반도체 제조용 불화수소의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대한 중국의 장악력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중 전략경쟁이 치열하게 전개 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중국이 글로벌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품목에 대한 전략 무기화는 엄연히 작동하고 있는 현실이다. 제2의 ‘요소수’ 사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림 3> 소부장 주요 지표 추이

    <표 1> 공급망 리스크 취약 품목의 국가별 현황

    <표 2> 국가별 수입 중 공급망 리스크 취약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

    <표 3> 우리 소부장 및 공급망 정책과 주요 내용

    5)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및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제49조(협력모델의 발굴), 제50조(협력모델에 대한 지원), 제51조(규제 개선의 신청 등), 제52조(규제 개선 관리 및 감독 등).
    6) 산업통상자원부(2023), “수요-공급기업 협력모델을 세계(글로벌)로 확대”, 보도자료, 6월 1일.
    7) 공급망 3법은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기본법’(2023년 12월 제 정),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 및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특별조 치법’(2023년 5월 개정),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안’(2024년 1월 제정)을 말한다.
    8) 불화수소 제조업체인 일본 모리타화학공업은 수출규제 발표 이후, 중국 상하이 사업장에서 생산한 고순도 불화수소를 한국에 공급할 계획임을 밝힌바 있다(한국경제, 2019).
    9) 일본 수출규제 발표 이후 2달 만에 삼성전자는 국내 불화수소 생산업체인 솔브레인과 이엔에프테크놀로지가 생산한 고순도 불화수소를 반도체 생산공정에 투입했다(동아일보, 2019).
    10) 한국과 일본 양국은 2019년 일본 수출규제 이후 4년 만에 상대국에 대한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화이트리스트에 재등록했다.
    11) 중국은 저순도의 불화수소와 함께 불화수소 원료인 무수불산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다.

    3. 미증유의 글로벌 산업 환경, 불편한 진실 그리고 우리

    8월 마지막 주, 올 한 해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 한 국제정치 이벤트였던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 적으로 마무리됐다. 산업적 시각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허용, 방위비 인상 등과 같은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자극하는 민감한 안보 의 제가 다뤄질 것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이에 못지 않게 미국에 대한 우리 기업의 대규모 투자 역시 초미의 관심사였다.12) 최근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 는 한·미 정상회담의 단골손님이었다. 그리고 상 호 밀착되고 있는 한·미 간 산업 협력의 상징으로 대접받았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의 파고가 우리 산업을 덮치고 있는 상황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 의 균형추를 최대한 유지하려는 우리의 레버리지(협상카드)로 역할을 하며 리스크를 낮추는 데 크 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1,500억 달 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갖는 함의는 사뭇 다르다. 단순히 미국의 경제안보에 대한 협력 차원을 넘 어, 동맹에도 ‘재조정’의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MAGA Trumpism의 강력한 통상(관세)×산업정책의 파괴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산업의 기반, 즉 소부장 생태계가 체감하는 강도는 기존 질서를 뒤흔들 정도이다.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글로벌 제조업 판도를 바꾸기 위해 미국이 돌아왔다. 한때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며 WTO 체제를 앞장서서 만들어 갔던 미 국은 보호무역과 산업정책을 양손에 들고 글로벌 제조업 질서를 흔들고 있다. 상호관세와 품목관세 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장 전방 위적 관세 부과가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는 것은 익히 예상되었던 바이지만, 놀라운 것은 예상보다 신속하게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발 통상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별 로 차등 적용된 상호관세는 해당국의 미국 시장접 근 역량, 즉 미국 내수시장에서 경쟁우위 수준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 요인이다. 미국은 포기할 수 없는 글로벌 최대 시장이다.
    다행히 우리는 핵심 경쟁국인 일본, EU와 동일 한 15%의 상호관세를 부과받아 최소한 같은 선상 에서 경쟁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확보했다. 그러 나 한·미 FTA로 누리던 가격 경쟁력의 이점은 상 실했다. 압도적인 글로벌 독점력에 기반한 제품보다는 무관세를 활용한 경쟁력 있는 소비재·중간재 수출과 현지 생산을 결합한 GVC 구축으로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던 우리 전략은 이 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더 우려스 러운 것은 미국발 관세 충격을 흡수할 만한 여력 과 대응 수단이 우리 소부장 기업에 턱없이 부족 하다는 것이다.

    12) 류진 한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8월 25일 열린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미국의 제조업 부흥(제조업 르네상스)을 위해 1,500억 달러(약 208조 원)의 대미국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시스(2025), “韓 기업들, 1500억 달러 대미 투자… 제조업 부흥”, 8월 26일.

    <표 4> 미국의 주요국 상호관세율

    <표 5> 주요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투자 프로젝트

    <표 6> 최선단 반도체의 국가별 점유율 전망

    자동차부품산업이 비등한 예다. 5월 3일 발효 된 25%의 자동차부품에 대한 품목관세가 10%포 인트 경감된 15%의 상호관세로 일단락됨으로써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한·미 FTA 시대에 없었던 15%의 관세는 중소기업 중심의 자동차부품업계 에는 엄청난 부담이다. 완성차는 대미 투자 확대 를 통해 관세 충격을 분산할 수 있지만13), 부품산 업은 영업이익 등을 고려한 투자 여력, 해외투자 리스크 부담 등으로 인해 대미 투자 등과 같은 방식으로 관세 충격에 대응하기 어렵다. 더 큰 위협은 완성차기업의 현지 공급선 전환 전략이다. 완 성차 업계의 입장에서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현지 조달을 확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14) 바로 미국이 의도하는 바다. 문제는 우리 부 품업계의 완성차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 는 것이다.15) 납품 및 대미 수출 물량 감소는 곧 우 리 부품 생태계 규모의 축소로 귀결된다. 규모의 축소는 곧 ‘규모의 경제효과’ 상실과 같다. 품목관세는 소부장 생태계에 더 치명적이다.16) 지난 3월 2일(25%)과 6월 4일(50%) 연이어 발효 된 철강·알루미늄 제품 및 파생상품에 대한 품목관 세 조치에 더해,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8월 19일(현지 시간) 추가적으로 철강·알루미늄 파생 상품 407종에 대해서도 품목관세 50% 적용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냉장고, 불도저, 크레인, 철도차 량 등 완성품도 있지만, 풍력터빈, 변압기, 엔진부 품, 전선·케이블 등 부품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미국 내수시장에서 특별한 독점력(경쟁력)이 없을 경우, 50%의 관세는 내수 공급망으로 시선을 돌 리기에 충분한 숫자다. 우리 소부장의 수출 잠재 력은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관세정책 효과에 더하여 미국의 산업정책은 미 국 내 생산 입지 매력도를 제고하면서 글로벌 지형 의 재편과 우리 소부장 생태계의 공동화를 재촉하 는 촉매제로 이미 작용 중이다.

    13) 현대자동차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2028년까지 미국에 260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3월 백악관에서 발표한 210억 달러보다 50억 달러가 증가한 규모이다. 대부분의 투자는 로봇 분야이며 미국에 3만 대 규모의 로봇 공장을 신설할 방침이다. 서울경제(2025), “현대차, 연 3만 대 美로봇 공장 신설…美 투자 50억 달러 더 늘렸다”, 8월 26일.
    14) 현대·기아차는 2025년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미국의 자동차부품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부품 현지조달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경제(2025), “관세 폭탄에…현대차 200개 車부품 美서 조달 검토”, 7월28일.
    15) 2024년 기준, 국내 자동차부품업계의 현대·기아차向 매출 비중은 90.3%에 육박한다. IT조선(2025), “15%로 낮춘 한미 관세…완성차는 ‘숨통’, 부품업계는 ‘한숨’”, 7월 31일.
    16) 지난 3월 이후 품목관세가 적용되고 있는 철강의 경우 이미 대미 수출이 크게 감소 중인데, 7월 실적을 살펴보면 전년 동기 대비 약 26%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

    <그림 4> 글로벌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중국 위상

    <그림 5> 대중국 소부장 교역 변화

    바이든 행정부 시 절, 파격적인 산업 육성·지원 내용을 담은 반도체 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등을 제정·운용 한 바 있는 미국은 제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대규모 감세법(One Big Beautiful Bill Act of 2025, 이하 OBBBA)17)을 통해 미국 내 제 조 비용 부담 축소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이번에 통과된 OBBBA에는 반도체와 과학 법상의 직접 보조금 규모를 총투자비의 10%에서 4%로 축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반대 급부로 투자세액공제율을 기존 25%에서 35%로 상향시켰으며, 특히 주목할 만한 내용으로 적격 시설 투자에 대한 100% 보너스 감가상각(Bonus Depreciation) 영구화와 미국 내 연구개발비 즉 시 공제 영구화 등 강력한 투자 촉진 제도도 담 겨 있다. 투자 비용을 공제받은 만큼 기업의 비용 경쟁력은 상승한다. 미국 내 투자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는 가뜩이나 고(高)관세 압박에 시달리는 글로벌 기업이 미국향(向) 투자를 결정하는 데 결 정적인 트리거가 될 수 있다. 반도체와 과학법상 의 보조금과 조세지원만으로도 이미 글로벌 반도 체 기업들은 반응했다. 여기에 더해 상식을 벗어 나는 고관세와 파격적인 세제 혜택은 이들의 반응 강도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미국반도체협회(SIA)에 따르면 2020~2025년 기간,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투자 프로젝트는 130건 이상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들의 총투자 금 액은 자그마치 6조 3,0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미 글로벌 반도체산업 지형은 미국의 강력한 산업정 책에 힘입어 바뀌고 있다(<표 6> 참조).문제는 지형 재편 과정의 소부장 기업이다. 기업 생존을 위해서는 현지 공급망에 편입되어야 한다. 관세의 벽은 넘기에 너무 높고 파격적 세제 혜택은 미국 내 투자를 통해 관세를 회피하도록 유혹한다. 역량 있는 소부장 기업의 미국향 투자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17)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ne Big Beautiful Bill Act of 2025).

    지난달 31일 타결된 한·미 상호관세 협정의 히어로는 단연 마스가((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MASGA)였다. 최근 중국의 거센 추 격, 숙련인력 공급 감소 등으로 여러 어려움에 직 면해 있는 우리 조선산업이 대체 불가한 압도적 선 박 건조 역량을 기반으로 한·미 산업협력의 상징 으로 거듭나게 된 점은 새로운 시장 개척, 중국 굴 기 저지, 전략적 위상 확보 등의 측면에서 분명 고 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모든 면이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 조선산업 생태계 측면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미국은 MASGA 프로젝트를 통해 우 리 조선산업 생태계를 미국으로 옮겨오기를 원한 다. 현재 황폐해진 미국의 조선산업 생태계 상황을 보면 일견 이해가 간다. 핵심은 기자재 생태계와 인력이다. 그런데 우리 역시 기자재 생태계와 인 력은 총량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미국으로 일 정 부분 옮겨질 경우, 벌써 외국인 생산 인력에 기 대고 있는 우리 인력 수급 상황, 갈수록 어려워지 고 있는 제조 환경 등을 고려하면 당장 우리도 그 공백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지난 3월 우리 조선산 업은 미 해군 군수지원함 ‘윌리 시라’호에 대한 첫 번째 MRO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하면서 미국 측의 감탄을 자아낸 바 있는데, 핵심은 우리 조선 산업 숙련 인력의 압도적 수리 역량과 경쟁력 있는 제조·기자재 생태계였다. 우리 조선산업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은 분명 반갑다. 그러나 미국 산업정책의 파급력은 우리 조선 기자재 생태계에 양날의 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 소부장 산업에 가장 큰 위협 은 글로벌 제조업 패권에 근접하고 있는 중국이다. 2016년 독일의 싱크탱크인 메르카토르 중국학연 구소(MERICS)가 익히 지적한 대로 우리는 중국 의 산업정책(중국제조 2025)에 가장 큰 영향을 받 는 국가 중 하나이며, 이제 그 영향으로 우리 제조 생태계의 생존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간 중국은 우리 소부장의 주력 수출시장이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중국이 세 계의 공장으로 본격 가동되면서 우리 소부장 산업 은 중국에 양질의 중간재를 공급하는 파트너로서 상호 호혜적인 산업밀월 관계를 형성하며 중국 산업의 성장 과실을 향유했다. 한때 우리 대중국 수 출 전체의 4분의 3(2015년 기준)이 소부장 수출 일 정도로 소부장은 전체 대중국 수출을 견인했다. 그러나 중국제조 2025로 대표되는 산업 고도 화 정책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18), 한·중 간의 상호 보완적 분업관계는 극심한 경쟁관계로 변모 했다. 그리고 범용 소부장 부문부터 하나둘씩 중국 에 대한 경쟁우위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에서 2011년 생산을 멈춘 ‘요소’, 우리가 절대적으 로 중국에 의존하는 무수불산 등은 원료, 제도(노동·환경 등), 전력, 임금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우 리를 앞지른 중국의 산업 경쟁력을 상징한다. 그리 고 이제 최후의 보루인 반도체마저도 일부 분야에 서는 우리를 앞서기 시작했다.19) 중국은 더 이상 값싼 노동력을 내세워서 최종재를 조립·수출만 하 는 국가가 아니다. 거의 모든 산업에 걸쳐, 원료, 소재부터 첨단 부품까지 완성형 밸류체인을 확보 하고 있는 제조 패권국가다. 그 결과 이제는 오히려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양질의 경쟁력 있는 중간재 를 공급받는 국가가 되었다. 메모리반도체 등 일부 첨단 분야를 제외하고 한·중 간 분업관계는 불편 한 진실처럼 이미 많은 부분이 역전된 상황이다.

    18) 중국제조 2025의 260여 개 정량지표 중 86% 이상이 목표를 초과 달성 한 것으로 나타났다(SCMC, 2025).
    19)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2025)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5대 분야 주요 기술 중 AI반도체(韓 80 대 中 90), 전력반도체(韓 70 대 中 75) 분야는 기술 수준에서 중국에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정의진·신동평, 2025).
    20) 삼성 SDI는 LCD 핵심소재인 편광필름 사업을 2024년 중국 우시헝신광전재료유한공사에 매각했다. 한때 고부가가치 소재로 각광받으며 우리 LCD 부품 국산화에 기여했던 편광필름은 중국업체의 저가 물량 공세로 인해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었다. 경향신문(2024), “삼성 SDI, 중국업체에 편광필름 사업 매각, 차세대 소재 개발 주력”, 9월 10일.

    <그림 6> 대중국 소부장 수입 집중도

    <표 7> 대한민국 ‘진짜성장’의 개념과 방향성

    4. 우리 산업의 ‘진짜성장’과 경제안보를 위한 소부장 정책 방향

    지난 6월, 국정기획위원회는 이재명 정부의 성 장 청사진과 철학을 담은 「대한민국 진짜성장을 위 한 전략」을 마련하여 발표했다. ‘진짜성장’이라 명 명된 이재명 정부의 성장 철학은 화려한 미사여구 는 없지만, 담고 있는 인식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진짜성장’은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통한 성장 잠재력 확충, 그리고 모두가 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 있는 국민이 체감하는 성장을 말한다. 성장과 분배가 균형을 이룬 교과서에 나올 법한 이상적 성장 담론이지만, 고도 성장기를 지나 그간 경험 해 보지 못한 미증유의 경제·산업·안보 환경을 마 주하며 성장의 갈림길에 서 있는 현 상황을 고려 할 때, 저성장의 흐름을 돌리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산업의 관점으로 그 시선을 좁혀보면, ‘진 짜성장’의 당위성은 더욱 명확하다. 우리 산업의 ‘진짜성장’은 그간 고도성장 과정에서 글로벌 경 쟁과 효율을 위해 우리가 소홀히 했던 공백 부문을 함께 갈 수 있도록 다시금 정돈·확충하고 새로운 글로벌 산업 지형에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을 비축함 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바로 소부장이다. 즉, 우리 제조 생태계의 전략적 가치 를 유지, 확충 그리고 강화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 는 고부가가치 성장, 함께 가는 성장, 흔들리지 않 는 성장은 경쟁력 있는 소부장 생태계 없이는 불가 능하다. 경제안보가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으로 자 리 잡으면서 국가 간 산업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 고 있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산업 지 형에서 양질의 제조 생태계는 그 자체로 전략 자산 이다. 그리고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그 위력은 다시 한번 확인됐다.
    그러나 우리 소부장 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현 실은 녹록지 않다. 그간 우리 산업이 일본과 경쟁 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위(수요 대기업)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래(중소·중견 소부장 기업)로 경쟁 우위 영역을 하나씩 확장해 갔던 과거의 소부장 성공 모델은 시장과 기술을 양손에 들고 기존 산 업·무역 경쟁 구도를 뒤흔들고 있는 미·중의 존재 감으로 인해 그 유효성이 반감됐다. 일본에 의존하 고 있는 첨단 소부장을 전략적으로 선택·국산화하 고, 그 성과를 근간으로 국내 소부장 생태계를 만들 어 가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그 경로 만으로는 고도화된 중국의 전방위적인 공습과 제 조업으로 다시 돌아온 미국의 일방통행에 대응하 는 데 분명 한계가 있다. 전선이 더욱 넓고 복잡해 졌기 때문이다.지금까지 우리 소부장 정책 목표는 우리 산업 이 조금 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첨단 소부 장 자립화 기반을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일 명 가마우지 구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지금의 경쟁력 있는 우리 생태계는 그 성과가 축적 된 결과다. 그러나 넓고 복잡한 전선에 걸쳐 우리 가 당면하고 있는 도전은 가마우지 자체, 즉 우리 소부장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파괴력이 세다. 이러한 측면에서 앞으로 우리가 다뤄야 할 소부장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생존’이다. 그리고 그 생존은 ‘진짜성장’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에 우리가 가진 전략 적 가치와 지위를 유지·강화할 수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 핵심 전략기술을 중심으로 산업 밸류 체인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전략적 포트폴리오, 혁 신의 균형이 갖춰져 있는 생태계 구조 등이 뒷받침 되지 않은 ‘생존’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재 우리 소부장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여전히 남아있는 ‘가마우지 구조’ 에서 오는 위협이다. 다시 말해 첨단 전략 소부장 의 높은 해외 의존도에서 오는 잠재적 리스크인데, 사실 일본 수출규제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우리 생 존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220억 달 러(2024년 기준)에 달하는 대일본 소부장 무역적 자가 말해주듯, 기술적 요인 그리고 경로 의존적 요인 등으로 우리는 여전히 일본에 상당수의 첨단 소부장을 의존하고 있다. 현재의 우호적 한·일관 계하에서 220억 달러의 무역적자는 한·일 산업협 력을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시시각 각으로 변하는 국제정치 속성을 고려할 때 일정 수준 이상의 전략적 자율성은 필요하다.
    두 번째, 미국의 일방향적 통상(관세)×산업정책 에 따른 소부장 생태계 공동화에서 비롯되는 위협이다. 해외투자 확대와 뒤이은 산업 공동화 문제는 매번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문제였지만, 이번 미국 이 주도하는 현상 변경 조치들은 그 파급력 측면에 서 통상의 해외투자와는 다르다. 미국은 당근(보조 금+조세지원)과 채찍(관세)을 동시에 활용하면서 기업이 GVC를 구축하는 데 선택할 수 있는 여지 를 상당히 줄여 놓았다. 미국에 투자하든지, 그렇 지 않으면 수출을 포기하든지 등 양 갈래의 선택지 만 남겨 놓았다. 기업 생존을 위해서는 현지에 혹은 최소한 가까운 지역으로 진출해야 한다. 모든 소부 장 기업이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역량 있는 소부 장 기업을 중심으로 해외 이전이 가속화·확대될 것 은 불 보듯 뻔하다. 그들에게는 미국 시장에 진입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다. 양질의 생태계 공백은 불가피하다.
    세 번째는 중국의 전방위적인 공습에 따른 위협 이다. 앞의 두 가지 위협이 잠재적 리스크라면 중 국발 위협은 현재에도 진행 중인 실재(實在)하는 위협이다. 노동집약적, 오염집약적 산업부터 시작 된 중국의 소부장 공습은 이제 장치집약적, 기술 집약적 산업까지 확장돼 있다. 그리고 경쟁국들은 예외 없이 그들의 물량 공세에 무너졌다. 일찍부터 그간의 상식을 벗어나는 산업정책을 토대로 선 공 급 확대, 후 구조조정을 공식으로 삼아 진행된 그 들의 산업 영토 확장은 섬유, 철강, 화학을 넘어 전 기차, 태양광, 디스플레이, 배터리, 반도체, 우주· 항공까지 업종을 불문한다. 가장 근처에 있는 우리 는 이미 전 산업에서 그 파괴력을 체감하고 있으며, 안전지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우리 눈 앞에 풍선효과처럼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갈 곳을 잃은 중국발 소부장이 있다. 격전은 피할 수 없다.
    네 번째 위협 요인은 중국에 과의존하고 있는 공 급망에 잠재되어 있다. 중국발 소부장 공습이 우 리 소부장 생태계를 직접적으로 잠식하면서 생존 을 위협한다면, 중국산 원료, 소재, 부품 등 우리 산업 가동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일종의 산업 보급 선은 ‘의도된 단절’을 통해 우리 산업의 생존을 충 분히 위협할 수 있다. 비록 의도되지 않았다 해도, 우리는 이미 와이어링 하네스, 요소수 등에서 리스 크의 경제안보적 심각성을 확인했다. 우리 산업에 중국산 소부장은 많아도 그렇다고 적어도 안 되는 전략적 균형이 필요한 뜨거운 감자임은 틀림없다. 우리 소부장 현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신호는 대부분 우리가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봉착했음을 알리고 있다. 정책은 신호에 부응해야 한다. 경험 해 보지 않은 위기라면 정책도 그에 걸맞게 창의 적이고 파괴적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소부장 정책 목표는 글로벌 4대 소부장 강국, 수출 4강, 소부장 국산화 및 경제안보 강화 등이었다. 우리 가 지향해야 할 목표인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우 리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두루 공감하게 하기에는한계가 있다. 전환 수준의 정책을 생산하고 공급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전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보다 선명한 목표가 필요하다. 바로 ‘생존’ 이다. ‘생존’이 주는 메시지가 원초적이기는 하지 만 이보다 더 현재 우리 상황을 대변해 주는 표현 은 사실 없다. 앞으로의 소부장 정책은 ‘생존’을 중심에 두고 설계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산업의 ‘진짜성장’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소부장 없이는 산업의 ‘진짜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림 7> 대일본 교역 구조

    생존을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네 가지의 잠재 적·실재적 위협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정책이 가 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당장 발등의 불인 미국의 관세×산 업정책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핵심은 우리 소 부장 생태계의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다. 단기적으 로는 관세 직격타를 맞은 부품 생태계 등이 생존 할 수 있도록 정책금융을 공급하는 한편, 역량 있 는 소부장 기업이 안전하게 미국 혹은 북미로 진 출할 수 있도록 업종×지역 특성에 맞는 해외진출 지원 패키지를 공급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더 중 요한 것은 중장기적 대응이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소부장 생태계 구조혁신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 다. 미국의 압박은 경쟁열위 소부장 기업의 자연스 런 도태를 유도한다. 문제는 경쟁력의 경계선에 있 는 기업들이다. 이들을 위해서는 AX를 토대로 사 업 재편, 사업 전환 등의 창의적·적극적 활용과 함 께 M&A 등을 통한 규모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생태계 규모 유지·확대를 위해 외부로부 터 수혈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해외투 자 유치다. 환경은 나쁘지 않다. 국가별 상호관세 차이를 우리의 경쟁우위 자산으로 활용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15%의 상호관세를 부여받았지만, 중국,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보다는 낮다. 생산 입지 경쟁력 측면에서 결정적 요인은 아닐 수 있지만, 우리 생산 입지 경쟁력 을 이 기회에 다시금 평가하고 제고하기 위한 촉매 제는 될 수 있다. 이들 국가로부터 떨어져 나온 기업들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입지 환경을 제공한다면, 우리 소부장 생태계는 규모 측면에서 성장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핵심 전략 소부장 확보에는 다층적 접 근이 필요하다. 다층적 접근의 핵심 키워드는 중국이다. 사실 지금까지 핵심 전략 소부장은 일본, 독일, 미국 등 소위 소부장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 는 소부장이 주 타깃이었다. 특히 일본 수출규제 이후 일본에 과의존하고 있는 100대 전략 소부장 에 대해 2019년 당시 추가경정예산 그리고 소재 부품기술개발사업의 연장을 통해 대규모 투자가 진행됐다. 지금도 그 접근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 히려 규모와 강도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 보다 지속성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소부장이 마주해야 할 글로벌 경쟁환경에서 이것만 가지고는 불충분하다. 중국 소부장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그러나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전략 소부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우리가 반드시 지 켜야 할 경쟁력, 중국에 상실한 경쟁우위를 경제 안보적 목표에 따라 다시 확보해야 하는 것, 중국 의 고도화 방향에 편승해서 활용할 수 있는 것 등 이 모두 포함된다. 중국에 주력시장을 상실하고, 기술·제품의 고도화라는 미명하에 첨단시장으로 밀려 이동하는 것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엄청난 체력을 가지고 지치지 않고 거북이처럼 따라오는 중국을 뿌리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언 젠가는 따라잡힌다. 그래서 주력시장을 잘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책 대상이 다층적이라 는 것은 이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도 다층적이어 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품목의 성격에 따라 경 쟁력의 핵심은 R&D일 수도, 투자 규모 확대일 수 도, 규제 합리화일 수도 있다. 정책 유연성을 발휘 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세 번째로 필요한 것은 ‘협력 모델’ 개념의 확장 이다. 이제는 ‘협력’을 넘어선 ‘동맹’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협력은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사 이에서 활발하게 진행됐다. 성과도 있었다. 무엇보 다 일본 수출규제를 경험하면서 기업들이 상호 협 력의 필요성과 유효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상황은 수 요-공급기업 간 수직적 협력만으로는 그 파고를 넘 기 어렵다. 경쟁 상대로 중국을 생각하면 더욱 그 렇다. 경쟁기업 간 수평적 동맹, 지역별 전략적 동 맹, 해외기업과 국내기업 간 동맹 등 기존 발상을 뛰어넘는 창의적 발상의 기업 간 혹은 국가 간 동 맹이 필요하다. 미국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 기 위해 성사된 현대제철-포스코 간 동맹이나, 미 국을 포함한 아세안 등의 신흥시장에 대응하기 위 한 현대자동차-GM 간 동맹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소부장 기업은 무엇보다 규모화가 필요하다. 반면 투자 리스크는 크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공 동의 이해는 충분히 도출될 수 있다. 정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방향 전환을 위한 마중 물은 제공할 수 있다. 소부장 기업의 전향적 행동 전환을 위한 제도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이제 소부장은 산업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물론 지금도 산업정책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정책의 무게추는 전략 소부장에 대한 R&D, 그리고 그 성과를 사업화하 는 데 필요한 금융, 인력 양성, 규제 개선, 실증 인 프라 구축 등 기술정책에 더 기울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작금의 소부장 상황은 국가 제 조업 전략 차원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산업 별 전략에 따라 그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소부장 전략이 설계되어야 한다. 어떻게 산업의 미래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투자, 규제, 인재, 입지, R&D, 조세·재정지원 정책 간 조합이 결정되며, 이를 토 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소부장 생태계가 그려진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첨단전략산업과 소부장 간 정 책 및 거버넌스 통합 혹은 연계를 검토할 필요가있다. 이인삼각처럼 둘 사이는 따로 갈 수 없는 불 가분의 관계다. 그리고 우리가 더 효율적으로 소부 장 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소부장 목표가 산업별로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소부장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가마우 지 구조 극복이라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추격했던 지난 25년과 달리, 앞으로의 25년은 추격도 수성 도 그리고 역습도 해야 하는 험로가 예정되어 있 다. 길이 어렵다는 것은 같은 거리를 가도 더 많은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체력은 기본 에 충실한 양질의 생태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다 시금 우리 소부장 생태계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지금이다.

    핵심 주제어: 소부장, 공급망, 경제안보, 진짜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