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종 서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총괄본부장
본 원고는 월간 KIET 산업경제 정책과 이슈에 실린 '글로벌 이차전지산업 현황과 향후 과제'를 발췌하여 게재한 원고입니다.
최근 미국이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여 8월 1일부터 시행을 공표하였다. 업계에서는 그간 중국 전기차의 미국 시장 진입이 많지 않았던 만큼 전기차 관세 인상으로 인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관세 인상이 중장기적으로 국내 배터리사의 가격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거란 기대도 있다. 배터리를 산업의 지속 성장성 측면에 서 보면, 글로벌 정책 변화에 대한 대응과 함께 업스트림(Upstream)인 핵심 원료, 소재에 대한 공급망의 경쟁력과 미드(Mid)·다운스트림(Down-stream) 영역에서의 차별화된 기술경쟁력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올해 들어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에 들어서면서 배터리 업계의 성장이 주춤하고 있지만, 배터리산업은 결코 사그라들 산업이 아니다. 배터리는 현재의 휴대폰, 노트북, 전기차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로봇, 드론, 우주산업 등 미래 모빌리티(mobility)의 핵심 동력원이다. 또한 지구 온난화 억제를 위한 넷 제로(Net Zero) 달성에 신재생에너지의 사용 확대는 필수적인데,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 배터리로 구성된 ESS 즉, 에너지 저장 장치이다. 나아가 친환경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수전해 그린수소의 생산에도 에너지 저장 장치는 핵심 경쟁력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지구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배터리산업은 계속 성장할 것이며, 지금의 일시적 둔화는 방향이 아닌 속도의 문제라고 본다. 최근 세계 각국은 배터리산업을 반도체에 버금가는 신성장산업으로 인식하여 자국 내 배터리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일찍이 정부 주도하에 전기차와 배터리산업을 내수 위주로 성장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주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본고에서는 글로벌 배터리산업을 둘러싼 패권 경쟁 현황과 공급망 현안, 한국 배터리 업계의 경쟁력 현황을 살펴보고, 사용 후 배터리산업을 포함한 차별화 경쟁력 확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소견을 기술하고자 한다.
(1) 글로벌 배터리 시장
SNE Research사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세계 배터리 시장 규모는 706GWh로 중국 67%, 한국 23%, 일본 7%, 기타 3%의 점유율(기업의 국적 기준)을 보였다. 세계 시장에서 중국의 내수 시장을 제외하면, 320GWh로 한국이 49%, 중국이 34%, 일본 16%, 기타 1%였다.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의 내수 시장이 세계 시장의 절반을 훨씬 넘는 규모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 업체가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한국이 1위를 달리고 있다. 배터리 업체별로 보면 2023년 말 세계 시장 1위 업체는 CATL (중) 점유율 36.8%, 2위는 BYD(중) 15.8%, 3위 LG에너지솔루션(한) 13.6%였고,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1위 LG에너지솔루션(한) 27.8%, 2위 CATL(중) 27.5%, 3위 Panasonic(일) 14%로 한국 업체가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한국무협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분기에 중국을 제외 한 시장에서 CATL이 27.5%로 1위, LG에너지솔루션이 25.7%로 2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CATL이 유럽 시장에서 가성비 배터리 전략으로 약진하여 유럽에서의 점유율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 중국의 부상
중국은 이제 세계 1위의 배터리 생산국으로 해외로 시장을 급속히 확대해 나가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결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CSIS(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은 정부 주도하에 전기차 배터리산업지원 정책인 ‘신에너지지원 정책’으로 2009~2021년까지 4,900억 위안(90조 5,000억 원)을 전기차 생산보조금으로 지급하며, 전기차와 배터리산업을 육성하였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배터리 내수시장(2023년 기준, 세계시장의 55%)을 갖고 있으며 전기차 충전 인프라 분야에서도 8대/기로 세계 평균 10대/기보다 높다.
특히 배터리 생태계의 핵심인 공급망 분야에서도 한국의 NCM(A) 배터리보다 20~30% 저가인 LFP계 배터리를 위주로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 능력(CAPA)을 높여왔고, 무엇보다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흑연, 리튬, 코발트, 니켈의 정·제련과 양극 전구체, 음극재 등의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절반이 넘는 규모의 큰 내수시장과 국가 전략산업으로 정부의 대폭적 지원, 공급망 우위를 바탕으로 배터리 강자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3) 각국의 배터리산업 육성 정책과 공급망 현안
배터리산업에서 중국의 압도적인 공급망 우위를 탈피하고, 미래 성장 산업으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히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EU는 핵심원자재법(CRMA) 및 배터리 규정(Battery Regulation) 등 육성정책과 환경규제를 통해 각자 자신의 구역 내 배터리산업 생태계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IRA에서는 중국 위주의 배터리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 우려기관(FEOC)을 정의하여 중국에서 생산되거나 중국이 아닌 제3국이라도 중국 정부와 관련된 지분이 25% 이상인 기업에서 생산되는 핵심광물, 소재부품, 배터리에 대해서는 2025년부터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제외한다고 명시하였다. 단, 최근 흑연의 경우 중국 이외의 공급선 확보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한국정부와 기업, 협·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여 2026년 말까지 2년간 FEOC 적용을 유예할 수 있도록 하였다. EU도 배터리 규정을 올해 2월 18일부터 시행 중에 있으며, 탄소발자국 신고 및 시행, 생산자 책임, 재활용 목표 등 주요 의무와 요건들을 일정을 정해 단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일본 역시 자국 내 생산 확대를 위해 전 기차와 배터리, 반도체 등 5개 전략 분야에 대해 국내에서 생산, 판매하는 기업에게 법인세 40%를 10년간 면제해 주는 ‘전략 분야 국내 생산 촉진세제’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1) 배터리 3사 및 정부의 노력
한국은 1999년 리튬이온 배터리를 양산한 이래, 휴대폰용, ESS용, 전기차용에 이르기까지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는 배터리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배터리사업에서의 오랜 적자 상황에도 불구하고 배터리 3사가 미래 비전을 위해 뚝심 있는 투자와 끊임없는 기술 개발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배터리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조공정에서 불량이 없도록 하는 배터리 설계와 일관되고 철저한 품질관 리가 매우 중요하다. 우수한 인력과 높은 제조경쟁력을 바탕으로 한국 배터리 3사는 2023년 기준 1,000조 원이 넘는 수주 잔고를 기록하였다. 정부는 2011년, 장기(9년), 대규모(약 1,000억 원) 국책 R&D 사업인 WPM(World Primier Material) 사업을 통해 지금의 한국의 양극재, 음극재 업체가 성장하고, 높은 기술경쟁력을 갖도록 지원하였다. 또한 2023년에 배터리 핵심 원료부터 차세대 배터리, 재활용 등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청주, 포항, 울산, 새만금 4곳을 국가첨단 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하였으며, 2030년까지 30조 원의 민간투자가 진행될 예정이다.
(2) 해외투자 현황과 현안
미국 IRA와 EU의 통상 정책에 대응하고,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해 한국 배터리 3사와 소재기업은 활발한 투자를 벌이고 있다. 2027년까지 미국 7개 주에 총 620GWh 규모의 14개 공장, 512억 달러가 투자될 계획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기업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2023년 42%에서 2026년 50~60%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배터리기업의 EU 내 배터리 생산능력은 2022년 말 기준 116.5GW로, LG에너지솔루션이 2025년까지 45GWh(폴란드)를, 삼성SDI는 10GWh(헝가리)를 증설할 예정이며, SK온은 올해 30GWh의 헝가리 이반차 공장을 완공하였다. 한·중 간 미래 시장 선점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동남아 시장에서는 현대차와 LG그랜드컨소시엄이 인도네시아에 전 밸류체인에 걸쳐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삼성SDI는 말레이시아 스름반에 원통형 배터리 생산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가장 큰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북미지역에서 IRA를 근거해 받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는 지난해 1조 3,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향후 현지 생산이 늘수록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 된다. 그러나 세계 매출이 1조 원 이상인 다국적 기업의 해외 자회사가 현지에서 최저 세율인 15% 미만의 세금을 내면 모회사가 있는 국가에 부족분을 추가로 납부하는 제도인 ‘글로벌 최저한세’가 적용되어 AMPC의 이익을 국내에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공급망 협력과 청정에너지 전환사업으로 혜택을 받는 투자기업의 소득에 대해서는 글로벌 최저한세의 적용을 제외하는 특례 정책 도입이 절실하다고 본다.
(1) 공급망 다변화와 가격경쟁력 확보
우리 기업이 배터리산업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업스트림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 국내 공급망 확보와 아울러 해외 공급망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 보조금과 낮은 ESG를 무기로 한 중국의 가격과 대응하기 위해서는 가격에 포커스한 기업의 중장기적 전략과, 정책, 세제, 금융 등 정부 차원의 지원 그리고 높은 수준의 ESG가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2) 공급망 연계 사용 후 배터리산업 육성
IRA 보조금을 받거나 EU 배터리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배터리 생산 시 일정 비율의 재활용 소재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우리 배터리 기업이 중국을 제외하고 현재 절반가량의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점유하며 성장하고 있으므로, 이제 사용 후 배터리는 원료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사용 후 배터리산업은 얼마나 많은 배터리를 확보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우리 기업이 배터리 생산, 판매를 주도하는 위치를 잘 활용하여 향후 사용 후 배터리를 지속적으로 공급망 확보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관점에서 기업의 주도적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작년 11월에 한국배터리산업협회가 민간 주도의 ‘사용 후 배터리 관리체계’ 업계안 및 관련 법안을 정부에 제출하였다. 사용 후 배터리 지원법이 조속히 법제화되고, EU 배터리 규정의 배터리 여권제도 도입에도 활용되기를 바란다. 또한 현재 사용 후 배터리에서 재활용 원료를 추출하는 기술은 습식, 건식 방법이 주로 이용되고 있는데, 폐수, Gas 배출 등 친환경적이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폐수, Gas 오염이 없는 친환경 재활용 기술 개발에 많은 기업, 기관들이 참여하여 국가경쟁력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관련 R&D 과제 지원을 더욱 확대하고 다양화하기를 기대한다.
(3) 지속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책과 기술 개발
우리 배터리산업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구 존속을 위한 녹색(Green) 환경 즉, 탄소배출 제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전기차의 보급 확대는 건강하고 깨끗한 녹색 지구 환경에 기여하므로 이를 위해 전기차와 배터리의 저가격화, 사용자 편의성, 안전성이 증가되어야 할 것이다. 전기차 충전에 필요한 전기는 신재생에너지로 바뀌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ESS가 필요하다. 현재 배터리의 공급망 문제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전지 시스템도 필요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몇 가지 정책과 기술 개발 과제를 화두로 제안한다. 첫째, 배터리의 저가격화를 위한 배터리 설계, 제조공정 단축 기술 개발, 둘째, 태양광, 풍력 발전과 결합된 ESS 패키지 보급의 정책적 의무화 및 관련 지원 즉, 에너지 생산과 저장을 결합한 패키지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술 및 정책 개발, 셋째, CTP(cell to pack), CTB(cell to body) 등 배터리와 적용(application)이 접목된 시스템 개발 강화, 넷째, 전고체, 반고체, 수계 전지, 배터리/ ESS 화재 억제 기술 및 관련 저가화 기술 개발, 다섯째, 공급망 경쟁력 대응을 위한 기술로, 친환경 정·제련 기술, 친환경 재활용 기술, 전구체 프리(precursor-free) 양극재 기술, Na-ion 전지 등 기술 개발, 여섯째, 국내 글로벌 R&D 거점화를 위한 국제 협력 R&D 및 배터리 분야 고급 인력 양성이다.
배터리 분야의 중국과의 경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케 한다. 예를 들어 LFP 배터리는 중국이 예전부터 잘해오던 분야이다. 우리가 경쟁에서 이기려면 중국의 LFP에 뭔가 차별화된 요소가 더 있어야 한다. 중국이 약한 디테일한 케미스트리, 일관된 품질, 안전한 설계 등은 우리가 잘하고 있는 분야이다. 여기에 민관의 협력과 지원 노력이 좀 더 더해진다면 경쟁 우위를 지속 점할 수 있을 것이다.